뚝이 터졌어요!
비가 온다. 소나기가 오락가락하던 어제완 달리 곱게 내린다. 우산을 옆으로 비켜 잡지 않아도 그 애와 어깨를 나란히 우산 속에 두어도 방해하지 않을 예쁜 비다.
방학 중 이라 학교를 지키는 일직 근무는 무료하지만 차분히 내리는 비가 맘을 빼앗는다. 유리창을 활짝 열고 빗속으로 빠져든다. 창 밖 상쾌한 바람에 묻어오는 속삭임이 옛 일들을 떠올리게 한다.
삼십여 년 전. 경력 7년차. 객지 생활을 하다가 운 좋게도(3대가 덕을 쌓아야 온다 함) 금산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십대 후반에 모교(성대)로 돌아오니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세 개 마을(신평, 성당, 서대) 학부모님들 모두가 어르신이시고 동료교사들 대부분이 은사님이시며 아이들은 몽땅 동생 조카들이었다.
때와 장소 가리지 않고 아이들과 학부모와 어울리며 열정을 다했으나 처신에 제일 어려운 것이 담배였기에 야무지게 맘 다잡아 끊어 버리고 우리 동내 우리 학교 우리 아이들에게 몸을 마꼈다.
명절날 당직은 물론 교사들의 갑작스런 일로인한 숙직과 폭우 폭설로 인한 일직은 모두 맡아서 했다. 그 때마다 아내는 아이를 업고 밥 바구니를 나르느라 고향에 온 것을 푸념하기도 했다.
남쪽지방의 홍수 피해 속보방송으로 텔레비전 아나운서 목소리는 높아 가는데도 우리 대전은 평온하다. 운동장가 은행나무도 백합나무도 온 몸을 내마끼곤 가만히 서서 멱을 감는다.
강둑이 터져 집들이 침수되고 논밭을 쓸고 간 붉은 흙탕물이 텔레비전 화면에 가득하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삼십 년 전 폭우에 놀란 마음에 천둥번개에 소난비가 오는 날이면 아파트 앞 버드내에 나가 냇물의 불어남을 살피며 괜한 물난리걱정을 한다.
1977년 8월 7일 밤.
지루한 장마철도 끝났건만 어제부터 비가 질질 거린다. 이삭을 팬 벼에게도 이롭지 않은 비다. 우비를 쓰고 쇠꼴을 겨우 몇 주먹 베어 짚과 섞어서 여물을 끓여 먹이고 대리 숙직을 하러 학교로 왔다.
학교 앞 냇가엔 제법 많은 물이 흘렀다. 비가 오는 탓으로 날이 금방 어두웠다. 손전등을 들고 순찰에 나섰다. 화단엔 키다리 해바라기가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비를 철철 맞고 운동장 여기저기엔 개구리들이 폴짝거리고 두꺼비도 어슬렁거린다. 큰 비라도 예감한 것인가?
밤은 깊어 가는데 빗줄기는 더욱 굵어져 숙직실 창을 세차게 두드린다. 번쩍번쩍 번개가 꼬리를 물고 천둥은 점점가까이에서 으르렁 거리더니 전깃불을 먹어 버린다. 천둥번개 앞에 죄 없는 이 없다더니 벼락이 떨어질 것 만 같아 무서움에 떨었다.
아저씨가 초를 찾아 불을 붙였다. 촛불은 번갯불에 눌려 허물어지고 있다. 손전등을 창밖으로 비췄다. 빗줄기는 굵고 세차졌다. 불빛은 빗속을 뚫지 못하고 묻혀버린다. 빗소린 여름 밤 개구리의 울음소리보다 더 와글거린다.
라디오에선 폭우예보가 없었으니 곧 멎겠지 하며 맘을 달랬다. 잡혀간 전깃불은 돌아오질 않고 먹통이 된 라디오의 찌직찌직 거림이 더욱 불안하게 한다. 쉼 없이 번쩍이는 번개 불빛에 얼굴이 화끈 거리고 고막이 터질듯 찢어지는 천둥은 쩌렁쩌렁 벽을 흔들어 간을 옥죈다.
몇 시나 됐을까? 열 한 시?
아무래도 비의 기세가 수상쩍다. 창밖을 비췄다. 어디서 온 것인지 비스듬히 기운 음료수 병이 둥둥 떠 번갯불에 보였다. 순간 방바닥에 물이 차왔다. 머리가 쭛빗 했다. ‘학교가 이정도면 마을은 물바다가!’ 불길함이 스친다. 학교는 마을의 위쪽에 있으니 말이다.
숙직실 부엌문을 박차고 나가니 운동화가 동동 떠있다. 운동화를 얼른 잡아 신고 밖으로 나왔다. 물이 허리를 감는다. 칠흑 같은 어둠이지만 끊이지 않는 번개불빛으로 주위 상황을 헤아렸다. 숙직실이 있는 뒤 운동장이 물바다가 됐다. 벽돌로 둘려 쳐진 담 때문에 물이 갇혀 미처 빠지지 않았나 싶어 아저씨를 다급히 불렀다.
“아저씨! 담을 밀어요.”
아저씨가 챙긴 손전등으로 담을 비춰 다가갔다. 둘이서 아무리 힘을 주어도 끄덕 않는다. 몇 번을 밀어 봐도 넘어갈 기미가 없다. 포기하고 돌아서서 몇 걸음을 옮기는 순간이다. 꽝 소리와 함께 고여 있던 물이 한꺼번에 쏠리는 물살에 몸 가누기가 힘들었다. 물의 압력에 담이 스스로 넘어진 것이다. 아저씨와 손을 잡고 물살을 헤쳐 나가 옆에 있는 창고의 쇠빗장문고리를 간신히 잡았다.
갇혀있던 붉은 황토물이 소를 이루어 쏟아져 내려간다. 농약병 음료수병 바가지 나무토막들이 떠내려가는 모양이 번갯불에 언뜻언뜻 보였다. 죽었구나 싶었다. 학교 앞 냇둑이 터졌음을 직감했다.
손전등을 비춰가며 물살이 느린 곳을 골라 앞 운동장으로 나왔다. 운동장 가운데로 물길이 생겨 성난 물이 꽐꽐 흐른다. 교문 쪽을 비췄다. 교문이 보이지 않는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둘이서 손을 꼭 잡고 운동장 물길을 건넜다. 돌멩이들이 굴러와 발등을 덮쳐 왔지만 아픔을 몰랐다.
학교 앞 도로로 나왔다. 교문 쪽으로 갔다. 아직은 무너지지 않은 담장 틈으로 능구렁이가 기어오르고 있는 모습이 손전등에 잡힌다. 내는 두 갈래로 나뉘어 졌다. 그 하나가 도로를 뚫고 교문을 밀어 운동장으로 흘렀다. 아찔했다. 마을을 쓰러버렸나?
냇둑을 따라 마을로 향했다. 냇물은 으르렁대며 둑을 흔들고 사납게 흐른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것은 바위들이 구르는 소리였다.
“뚝이 터졌어요!”
학교에서 제일 가까운 집에서 촛불이 보였다. 무척 반가웠다. 고맙기까지 했다. 어디론가 피신을 가고 촛불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마을 안길로 달렸다. 집안으로 물이 못 들어오도록 짚토막으로 막고 있는 아저씨를 만났다.
“이거 소용없어요. 어서 피하세요!” 무슨 소리냐는 듯 빠끔히 바라보신다.
“뚝이 터졌다구요” 다급하게 소리치곤 집으로 달렸다. 아내에게 아기를 들쳐 업히곤 언덕에 있는 교회로 내몰았다.
“논뚝 어덕을 조심혀!” 허둥대는 모양이 불안하신지 아부지가 내 등에 대고 나무라신다. 아낸 이때의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놀리곤 했다. 교회엔 물난리를 피해온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걱정을 하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이 안전한 것을 보니 마음은 진정되었다. 마을 뒤 언덕길을 따라 학교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갔다. 사람들이 여기 저기 삼삼오오 비닐 속에서 우산 속에서 걱정이다. 학교아저씨도 집을 들려 거기에 와 있었다.
“아저씨, 학교로 가요.”
마을 사람들이 말렸지만 학교로 침투했다. 아까보다 물이 줄어든 것 같았다. 숙직실로 갔다. 당직함이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다. 담요와 열쇠 꾸러밀 챙겼다. 교무실로 갔다. 교실 바닥엔 물이 넘실거리고 책상은 이리 저리 쓸리고 쓰레기통이 둥둥거린다.
오래된 목조건물이라서 곧 쓰러질 것만 같은 생각에 마음은 다급한데 캐비닛 열쇠가 잡히질 않는다. 손전등 불빛은 피곤한 듯 힘을 잃고 들랑거린다. 손전등 궁딩일 손바닥으로 쳐 깨워가며 이놈 저놈 열쇠를 집어넣었다. 손가락이 덜덜 떨려 구멍을 더듬거리다 간신히 열었다.
다행히 높은 선반에 있는 학적부는 젖지 않고 온전했다. 학적부를 담요에 쌌다. 우의를 벗어 나머질 쌓아 둘둘 말아서 하나씩 메고 서둘러 나왔다. 지옥에서 나온 듯 시원했다.
학적부를 교회로 옮겼다. 온 몸이 나른해 온다. 천둥 번갠 지치지도 않나 밤새 지랄이다.
눈물이 난다.
학교몰골이 처참했다. 교문주위와 운동장가에 서있던 아름드리 느티나무 세 구루가 몽땅 뽑혀 나뒹굴고 솔밭 언덕 가장자리엔 낙락장송들이 줄지어 쓰러져 있었다. 우리 학교를 우리 마을을 지켜온 삼백 살도 더된 나무들이 말이다.
그 나무 밑에서 할아버진 시조를 읊었고 할머닌 허리 쉼을 했다. 엄니 누님들은 소나무 높은 가지에 그네를 매고 분홍치마 휘날렸으며 우린 나무 등 말 삼아 타고 오르며 동심을 키웠다. 솔방울 솔잎 줍고 쓸어 난로 불씨 키워준 고마운 나무였는데…….
넓은 그늘 밑에 아이들 옹기종기 앉히고 꿈을 그리고 꿈을 노래하며 소나무처럼 느티나무처럼 크게 크게 자라라 일렀는데…….
개울로 변한 운동장은 흙을 채워 복굴 하고, 쓰러지는 낡은 교실은 현대식으로 새로 지으련만 아까운 저 나무들은 어찌할꼬!
간밤에 내린 사백미리의 집중호우 피해는 엄청났다. 숙직실이 기울고 교실 기둥이 허공에 떠있는 것은, 농경지가 토사에 묻히고 집들이 침수된 것은 피해도 아니었다. 윗마을 수통골은 삼십여 집들 전체가 침수되고 쓸려나갔으며 세 명이 사망했다. 마을을 외워 싼 산들의 벽이 손톱으로 할퀸 듯 하얗게 벗겨져 있다. 천둥에 산사태가 나고 바위 돌멩이들이 굴러 마을을 덮쳤던 것이다. 그리곤 좁은 냇가로 달려들어 냇바다을 구르다 물길을 막아 도로를 끊고 둑을 허물어 버렸다.
집이 쓸려가고 망가진 가정은 마을 회관에서 이웃들의 걱정으로 아픔을 달랬다. 피해상황이 알려지자 높은 분들 모시고 온 헬기가 요란스럽게 날아든다. 반쪽 남은 학교운동장은 헬기장이 됐다. 어떤 날엔 하루에 두세 번씩이나 날아왔다.
도로가 복구되자 이번엔 지프차가 줄을 댄다. 그 때 마다 마을 이장과 교장선생님은 진땀을 냈다. 신문 방송사에서도 나왔다. 기자들은 현장의 생생한 이야길 취재했다. 내 이야길 들은 기자는 학교를 지킨 젊은 선생이라며 큼직하게 신문에 소개 해다.
뒤 늦게 교육부 보통교육국장이란 분도 왔다. 교장 선생님의 상황설명을 듣곤 유공자들 표창상신을 내라며 돌아갔다. 그 땐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고 상은 어디로 날아갔는지 관심도 없이 바쁘기만 했다. 각 기관장들이 놓고 간 위로금으로 수해복구 지원 차 또는 위로 차 들린 손님들 접대하느라 발바닥에 불이 났다.
모교 성대초등학교 개교 육십 이 주년 체육대회를 한다는 문자가 손전화에 떴다. 열악한 환경으로 총동창회를 한 동안 갖지 못했는데 후배들의 열정으로 개교 회갑기념 동문체육대회를 한단다.
홍수피해후 깔끔한 건물로 바뀐 교정엔 추억이 서린 소나무들이 역사를 말해주고 있어 다행이다. 수많은 재난에도 꿋꿋했던 저 소나무의 청정한 기상을 닮은 고향사람들이기에 엄청난 시련을 극복하고 어느 농촌보다도 잘 사는 마을로 일구어 냈다.
아직 십여 구루가 남아있는 솔밭에서 쇠주를 나누며 옛 일을 회상하는 정담들이 빗속에서 두런두런 들려온다. 향긋한 솔 내음이 바람에 실려 온다.
‘서대산 정기를 받은 이세가, 꼿꼿한 저 솔처럼 자랄 아들딸이 동문들 가정에 숨어 있으니 잘 키우자’ 다짐하고 동문들 염원을 모은 함성으로 잠자는 서대산을 깨워야 겠다. 정기를 품어 내라고.
‘제비 날개 매미 나비 민들레’ 얼마나 정겨운 말들인가! 고향을 생각케 하는 이 말들에 온갖 재난을 몰고 오는 태풍수마에 이름을 주다니. 유순한 이름으로 달랠 생각보다 지구 온난화를 막는데 세계가 힘을 모아야 한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물난리. 올해도 어디에선가 겪어야 할 난리다. 그러나 우리 동내엔 안 올 테지 하는 막연한 믿음으로 여름을 맞곤 한다. 막지 못할 천재지변이라지만 인류는 그 시련을 통해서 더욱 영리하고 똑똑해졌다. 지형에 맞는 과학적인 홍수 관리와 대피계획으로 똑같은 피해를 당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다. 꼼작도 않고 비를 맞던 나뭇가지들이 흔들린다. 호우경보 지역을 표시한 지도가 티브이 화면을 채운다. 호우지역이 점점 넓어지고 태풍은 북상중이란다.
빨라진 아나운서의 말에 따라 또 가슴이 쿵쿵거리고 얼굴이 달아오른다.
“뚝이 터졌어요! 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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