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꽃 타령

새암 2010. 7. 18. 13:15

꽃 타령


  꽃피고 새우는 따뜻한 봄날이라 하였것만 춘래 불사춘 이로다. 4월 내내 이상저온으로 내의를 벗었다 입었다 변덕이다. 여기 저기 벚꽃 축제엔 꽃 없는 축제로 썰렁했다. 축제가 끝난 며칠 뒤, 퇴미 동산으로 벚꽃 구경하러 가던 날, 차가운 바람에 눈까지 흩날려 뼛속까지 시려왔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꽃은 건성으로 보고 내려와 버렸다.

  이상 한파에 일조량까지 부족해 농민들의 피해가 막심하단다. 하우스의 딸기며 수박이 제대로 성장을 못하여 상품가치가 없어 망했다는데 채소 값은 금값이다. 한창 청정하게 자라야 할 보리들의 키는 난쟁이로 싹수가 없다며 화난 트랙터들이 보리밭을 갈아엎어 버린다.

  그래도 한 사발의 햇볕이 아쉬운 식물들은 봄기운 놓치지 않고 모았다. 길가엔 오종종 다듬어 놓은 쥐똥나무가 파릇해지고 귀여운 개나리가 노랗게 피더니 진달래도 연분홍 그리움을 토해낸다.

  햇살 좋은 날 봄기운 알리려 학교구석구석 헤집고 뒷동산(오량산) 오르내렸다. 서른다섯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이끌고 다니려니 보통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걸어 다니질 못한다. 교실을 나갈 때도 그 몇 걸음을 뛴다. 복도에선 달리길 하며 화장실을 간다. 체육하려 운동장에 나가면 아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고삐 풀린 망아지만양 늑목으로 정글짐으로 철봉으로 왔다 갔다 마구 뛰어다닌다. 호루라길 불어도 아이들을 보내도 소용없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쫓아가 한참을 불러 모아야 한다.

  어른들은 나이가 들수록 움직이길 싫어한다. 기가 위로 올라 말만 많아진다. 그러나 아이들은 발에 기가 모여 있어 조용조용 걷질 못한다. 하루 종일 교실에 가둬 놓곤 쉬는 시간 마다 뛰지 마라 뒤꿈칠 들어라 혼낸다. 새색시 만양 다소곳하길 요구한다. 

  이런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현장학습을 다니느냐고 동료들은 걱정하지만 자연을 알아야 생명존중의 감성으로 멋진 연애도 할 수 있으며  글로벌세계의 인재로 자라리라 믿기에 어려움을 탓하지 않고 계속 나다녔다.

  

  아이들이 기다리는 토요일이다. 놀 토가 아니면 현장학습을 떠나기 때문이다. 간식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빨리 나가잔다. 학부모님들도 도우미 겸 참여하도록 했더니 예닐곱 명이 동참을 했다. 네댓 명씩 모둠을 지어 출발했다.

  ‘날씨가 좋구나’ ‘꽃이 폈구나’를 외치다 ‘봄나들이, 봄맞이 가자’를 소리 높여 부르며 혜천대학으로 향했다. 이 학교 교정엔 꽃이 많고 나무들이 잘 가꾸어져 있으며 넓은 수목원이 있어서 인근 주민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벚꽃이 환하게 우릴 반긴다. 아이들의 환호가 날아간다. 줄지어 잘 따라오던 아이들이 벚꽃 속으로 내달려 흩어진다. 커다란 운동장 주변엔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줄지어 꽃구름을 피웠다.

  꽃을 바라보며 꽃그늘 속을 달음질 하는 아이, 꽃을 잡으려 팔딱이는 아이, 엄마에게 꽃을 따 달래는 아이, 나무에 오르려 기를 쓰는 아이, 꽃가지를 꺾어 뛰는 놈에 뒤를 쫓는 놈, 냄새를 맡는 아이, 웅성거리는 벌에 기겁을 하는 아이---.  

  아이들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자유로이 놀게 내버려 뒀다. 금세 싫증이 났는지 달리기를 하잔다. 아이들을 세 모둠으로 나누고 엄마들도 한 모둠으로 줄을 서서 달리기를 했다. 아이들 응원소리가 운동장에 가득하다. 처음엔 주저주저하던 엄마들이 아이들을 이기려 체면을 버리곤 달리다 넘어질 뻔 하기도 했다. 모두들 즐거워한다. 환한 꽃이 되었다.


  등나무 그늘아래 끼리끼리 모여 앉아 간식을 먹었다. 빵 과자 과일들을 잘들 먹는다. 어떤 아이는 김밥까지 가지고 와 이손 저손에 거덜 났다. 엄마들이 가지고 온 딸기며 빵을 얻어먹는데 아이들이 먹다 남은 듯 한 참외 바나나 조각, 딸기 따위를 맨 손가락으로 집어 들고 불쑥불쑥 내민다. 엄마들이 민망해 한다. 받아먹자니 거북하고 거절하자니 아이가 실망할 테고 “고마워-” 겉 인사를 하곤 손가락 까지 빨아 먹었다. 아이는 신이 나서 돌아간다. “고맙다. 선생님 배불러 너희들 나눠 먹어.” 몇 아이들은 돌려보냈다. 아이들과 생활하다 보면 난처한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아이들끼린 입속에 들어가던 것도 빼앗아 먹기도 하고 주기도 하며 입을 맞대고 잘들 주워 먹어도 아무 탈도 안 나거늘 어른들은 큰 탈이라도 난 것처럼 기겁을 하며 깔끔을 떤다.


  간식 먹은 자릴 정리하고 꽃을 찾아 수목원으로 나섰다. 사발만한 하얀 목련꽃잎이 시컴시컴 멍들어 지고 있다. 이른 봄 알리던 산수유도 노란 빛을 잃어가고, 뇌를 흥분 시키던 매화도 청아한 빛이 다하고 있다. 앵두나무는 이젠 내 차례란 듯 터질듯 꽃망울을 부풀리고 있다.

  커다란 나무 아래엔 이름 모를 풀들이 꽃을 밀어 내고 있다. 큰 나무 밑이라 그런지 토양이 나빠서 그런지 거름기 없이 오종종 자라고 있다. 가냘픈 허리로 노란 꽃을 밀어 올린 쪼끄만 꽃다지가 하얀 꽃을 피운 냉이가 실바람에 하늘거리고, 도로로 꽃을 말아 올리는 꽃말이가 아이들에게 밟힌다. 눈에 잘 띄는 노란 민들레가, 자줏빛 제비꽃이 아이들 손에 잘린다. 흰색바탕에 자줏빛을 더한 난쟁이 개불알풀 꽃이 햇살에 반짝인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란 탓일까 이런 풀꽃에서 정감을 더 느끼며 반갑다.

  다른 꽃들은 설명을 잘 했지만 개불알꽃을 알려주기가 좀은 쑥스러웠다. “개불알이 뭐예요?” 엄마들이 피시스 웃는다. 신체를 나타내는 우리말은 쌍스럽다 저속하다 퇴출당하고 음랑 고환 생식기 성교 페니스 버자이너 섹스 따위의 한자어나 영어가 자리했다. “꽃이 지고 난 뒤에 씨앗주머니가 생기는데 그 모양이 개의 거시길 닮아서---집에 가서 아빠께 물어봐요.” ‘엄마 뭐야?’ 엄마와 함께한 아이들은 졸라대는데 엄마는 쩔쩔 맨다.

  어디선가 짙은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선생님, 저 꽃은 뭐예요?”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수수꽃다리가 자줏빛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가지를 잡아 당겨 냄새를 맡게 했다. 코를 킁킁거리며 향을 쫓던 아이들은 짙은 향에 홀라당 빠져든다. 그 향이 넘 좋아 미국으로 가선 미스 김이라 했단다. “수수꽃다리가 뭐예요?” 라일락을 우리 꽃 이름으론 수수꽃다리라 하며 수수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임을 알렸더니 이번엔 수수가 뭐냔 다. 엄마들에게 설명을 부탁했더니 모른다며 뒷걸음질이다.

  엄마도 자녀들도 문제풀이로 점수 올리기 경쟁에 매달리다보니 언제 자연에 나가 자연과의 관계가 소중함을 알았겠는가. 죽은 강을 살리느니 멀쩡한 강을 죽이느니 말들이 많은 것은 자연의 소중함을 모르는 탓이로다. 내가 사는 집의 일조권을 조망권을 그리 따지면서 산을 까뭉개도 강바닥을 파헤쳐도 강 건너 불구경이다. 

  살벌한 세상, 친구들이 경쟁자이며 내 자식에겐 하늘에 별도 따주지만 이웃이 배곯아 죽는 줄 모른다. 적자생존이 당연한양 신자유주의 덫에 걸려 노숙자로 방황해도 생활고로 자살을 해도 사회양극화를 획기적으로 해결하려는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부모 잘 만나 특별학원을 통해 특별한 학교에서 기득권을 세습하는 교육은 더욱 심화될 뿐이다. 따라가지도 못할 그들을 향해 너도 나도 학원으로 과외로 아이들 몰아보지만 대부분은 들러리로 허릴 휠뿐 개천에서 용 나기란 옛말이 된지 오래다.


  현장학습 때 마다 새로 나온 싹이나 뿌리, 꽃들을 씹어 보게 하여 그 맛을 각인 시키려 반 강제로 먹여왔다. 냉이뿌리를 씹으며 냉잇국을 먹었을 때 같은 맛이라며 반가워했고 씀바귀를 씹을 땐 오만상을 찌푸리며 퉤퉤 침을 뱉곤 옷소매로 혓바닥을 연신 닦아냈다.

  “이 꽃은 무슨 맛일까?” 수수꽃다리 가지를 흔들어 보였다.

  “써요- 달아요?” 꽃말이 사랑이며 꽃 향이 좋은 것을 보니 맛있을 거라 유도를 했다. 서로 먹어 보겠다며 호드득 호드득 떼어 가더니 입에 넣자마자 여기저기서 입을 닦아 내느라 애를 쓴다.

  “얘들아, 무슨 맛이 나던?”

  “선생님, 사랑의 꽃이 왜 써요?”

  “사랑은 쓴가요?”

  엄마들이 까르르 웃는다. 나도 얼굴이 달아오르게 웃었다. 선생님 얼굴이 빨간 해졌다며 아이들도 따라 웃는다.

  “집에 가서 엄마 아빠께 물어 봐라-.”

  어느 유행가 에서는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 했다. 그러나 사랑 없인 못사는 것이 사람이다. 하늘 땅 보다 더 큰 사랑이었기에 결혼을 했건만 세 쌍이 결혼하면 한 쌍이 이혼을 한다니 사랑이 달다고만 할 수는 없을게다. 세인들의 부러움 속에서 재벌가와 결혼한 사람들도 이혼을 하는 세상이다.

  사랑은 생물이라서 잘 가꾸지 않으면 떠난다. 사랑의 쓴 맛을 보지 말고 단 맛만 간직하도록 잘 가꾸는 법을 배워가길 바라지만 어디 그게 그리 쉽던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꽃들은 사랑의 아픔과 연계해서 태어난다.’(이외수)니 그래서 꽃은 아름다운 것일까? 우리 아이들만은 사랑의 상처로 피멍든 응어릴 밀어오린 꽃을 피우지 말길 바래본다. 꽃이 없음 삭막하겠지만 말이다. 그럼 다른 아이들이 피우란……? 이기심의 발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나만을 아는 세상. 공부에 찌들 우리 아이들이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관계 되어 있음에 눈을 뜨리라 믿는다.

  내가 찢어 버린 종이 한 장이, 엄마가 버린 음식물이, 아빠 차의 매연이 지구를 병들게 하는 것임을, 나비의 단순한 날갯짓이 날씨를 변화시킨다는 나비효과를 깨치리라 기대한다. 그리하여 작은 생물들을 사랑하고 그것들이 살아가는 산속과 물속을 아끼며, 사람이 살아가는 속이 자연이니 자연을 아낌은 사람을 귀히 여김이다.

  사람을 귀히 여기는 인간이 나라의 지도자가 될 것이며 지구촌의 리더가 되어 지구를 살려 낼 것임을 믿기에 꽃 타령을 한다.

  꽃은 기어이 열매를 맺는다. 나비효과는 더 커지리라 믿어 아이들 앞세워 들로 산으로 냇가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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