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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수메르어, 단군역사

새암 2015. 12. 12. 14:15

http://kr.blog.yahoo.com/badasok2004/1382289

히브리대학에서 수메르어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 온 조철수 교수가 더욱 심화연구 하여 발표 한 바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수메르어는 처음 1을 '아스 as'라고 하는 데 이는 <삼국유사> 고(古)한국어의 그것과 일치한다. 처음 빨래를 '아시 빨래'라고 하며 아침은 '아사'라고 하는 것이며 해 뜨는 아침을 의미하는 Asis가 여기서 유래한다.

언어 이외에 수메르 유래의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 '지구라트'이다. 지구라트는 벽돌로 쌓은 인조 탑이다. 물론 피라밋의 유래이며, 구약성서의 바벨탑의 전신이 다름 아닌 지구라트이다. 지구라트는 천문관측소, 고동 회의소, 제단, 무덤 등 다기능를 가지고 있다. 생각키로는 수메르인들이 어느 고산지대에 살다가 양강 유역으로 내려 왔다고 보는 것이다.

지구라트의 기능들이란 산이 가지고 있는 기능이기 때문이 다. 그렇다면 이들이 걸프 지역으로 통해 들어 온 해양족이 아니고 자고로스산맥을 타고 내려 온 고산족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라크 북쪽 산악지대와 그 너머 어디선가 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다행히 고고학자들은 지금 터키 그리고 몽고 지역까지 수메르의 유적을 찾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기원전 3500년경 과연 그 찬란한 고급 문명을 가지고 있던 지역은 과연 어딘가?

그밖에 수메르와 한국은 묘장제도, 순장제도, 60진법, 최고지도자의 상징을 봉황으로 삼고 있는 점 등에 있어서 앞으로 두고두고 그 유사성이 연구의 대상으로 남겨져 있다. 그러나 역사 콤플렉스에 걸린 미국에게는 이런 역사연구마저도 두려움의 대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인디언 원주민을 학살하고 세운 역사의 원죄 때문에 결국 미국은 끝까지 자기들 보다 오래된 나라들의 민족문화를 말살해 나갈 것이다.

김상일 기자 (한신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중) - 오마이뉴스

2003/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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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학자 크래머 (Kraemer, 1897-) 와 일본의 우에노 (上野景福) 교수가 발표한
것을 종합해 보면, "수메르족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자생한 민족이 절대 아니고
동방에서 이동해 왔다. 그것도 문자를 가지고 왔는데 바로 태호복희가 쓰던
팔괘부호 (八卦符號) 와 흡사한 문자를 가지고 5500 년 전에 서쪽으로 옮겨
왔다" 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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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신택 교수는 예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 분야의 연구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1830년대 처음으로 이라크에서 수메르 문자가 발견되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곳은 기독교였다.

왜냐하면 가장 최초의 사건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생겼을 것이라 여겨져 왔고 에덴동산도 그 지역 어딜 것이라 믿어 오던 터에 창세기의 창조설화와 홍수 설화 등이 수메르의 토판 속에 그대로 그 원형이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에 남자와 여자가 있었고, 동산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금기, 그런데 슈메르에서는 여자가 아닌 남자가 먼저 따먹는 다는 둥

그리고 홍수가 사람들이 다 죽는 데 지아슈드라는 의인이 있어서 배를 만들어 사람들은 구제한다는 둥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기록들이 쏟아져 나왔다.

 

고급문화 수메르에 대하여 히브리 문화를 저급문화로 분류한다.

서양문명은 그리스의 합리적 이성과 히브리의 감성적 신앙이라는 두 물줄기로 이루어진다.

이 두 물줄기는 고대 수메르 문명에서 만난다.

 

기원전 2000년경 수메르 우르 남무 왕국이 멸망하면서 슈메르 문명은 두 갈래로 갈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올림푸스 신전의 원형이 수메르의 딜문 동산의 그것이라고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히브리인들의 정신적 유산은 그대로 수메르의 것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자, 그러면 이라크가 저렇게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인류 문명의 정신적 고향이 황폐화되거나 말살되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슈메르어(발음)[ 뜻]

한국어 발음[단어 뜻]

슈메르발음[단어뜻 ]

한국어 발음[단어 뜻]

아누(Annu)[최고 신]

하느님 [하느님,上帝]

Bad 바드 [ 밭 ]

밭 (Bat) [밭, 田 ]

안 (An) [天]

하늘 (ha) [ 하늘, 天 ]

Na 나 [나 1인칭]

나 Na [ 나,我  ]

기르(Gir)

길 (Gil) [路]

Ge 그 [3인칭 ]

그 Ge [ 3인칭 ]

라 (Ra) [~ 에서 ]

로 (Ro) [ 조사 ]

I  이 [1 인칭 ]

이 [지시대명사]

아비 Abi [ 아버지 ]

아비 (Bo) [ 夫 ]

Uhma 움마[엄마 母]

엄마 Uhma [엄마 母]

니므 Nim [ 님 任 ]

님 (Nim) [ 사람 任]

 

 

 

(펀주: 수메르어와 한국어는 학자들의 언어학 분류로 <우랄-알타이어>이다.

 

이라크(메소포타미아)지역과 한국은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같은 언어로 분류된다.)
특히  조사를 사용해서 문장의 의미가 달라지는 언어는 '교착어'의 유일한 특징이라 할수 있다.


~로, ~가, ~의 , ~를 와 같은 조사를 사용하는 언어는 '교착어'가 유일하다.
   교착어를 쓰는 종족은 전세계적으로 어떤 민족인가?

동이족 계열 뿐이다.

 

터키도 교착어를 쓴다. 어순체계가 약간 다른데 터어키에서는 현재에도 학교에서 국사시간에 한국을 형제국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터키의 역사 교과서는 한국과 터키는 같은 민족이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펀주: 터키는 수메르문명에 의하여 문명이 일어난 부근에 후에 '돌궐(투르크)'의 일부가 다시 이동하여 생긴 나라로 보임.
물론 그지역 사람들과 피가 많이 섞여서 지금 모습이 우리와 많이 다름.
돌궐은 배달민족은 아니지만 가까이 있던 민족.
말하자면 삼국유사에 나오는 '호랑이족'이 아니었나 추정. ) 

 

그외 지구촌의 소수종족중에 교착어를 쓰는 곳이 그외 몇몇 종족은
중국의 묘족과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교착어를 사용한다.

 

(펀주: 묘족 - 동이(東夷)계열 민족.
인디언 - 만주와 시베리아의 고대 한국에서 이동한 것으로 밝혀짐.)

 

위의 도표에서 보듯이 수메르의 주신은 안누(Annu), 최고의 신을 뜻한다.

우리말의 하느님, 하늘님, 한울님과 같은 의미이다.
중세 이전에 쓰던  한눌님 으로 기준하면 이 단어는 전부 같은 발음이 된다.

(펀주: 고대 한국어에서 한 과 안 은 같은 말로 쓰임.)

 

하(아)가 뜻하는 것이 하늘과 위와 남성적인 것이라면 '느'가 뜻하는 것은 땅, 아래, 여성적인 것이다.
(누리(땅), 누이(누나) 같은 말도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이고
며느리, 마누라도 이 어원에서 나온, 여자를 지칭하는 말)

 

하느님이라는 말은 하늘과 땅 즉 천지를 부모로써 떠 받드는 것이며
모든 사람은 천지부모의 자식이란 뜻이 언어속에 그대로 전해진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근본사상과 정확히 일치 하는 것이다.

 

슈메르어 안(An)은 하느님을 뜻한다. 또한 이 '안(An)'은 제정일치 사회에서 군왕의 표상이 되었다.

고대 한국에서 원래 제왕이란 우주의 최고신을 대신하여 이땅을 다스리는 성인을 말한다.
고대에서는 그 시대의 최고의 지혜와 덕을 갖춘 성인을 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세습제로 바뀌게 되면서 여러 가지 폐해가 일어나게 되었다.

 

(원래 왕조는 세습제가 아니었다.
선출방식에서 심각한 문제가 드러나면서 강력한 중앙집권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세습제로 바뀌면서 여러 가지 폐단도 같이 발생하게 된다. )

 

한민족은 하늘과 땅의 민족이란 뜻이고 천손(하늘의 자손)민족의 뜻이다.
제왕은 (원래는) 스스로 솔선수범하여 스스로를 희생하고 백성들을 보살피는 그런 존재이다.
또한 지혜와 덕성을 갖추고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서 수많은 백성들을 더 살기 좋고 이롭게 한 존재이다.

 

슈메르인들이 사용했던 12궁도와 우리의 12간지, 60진법과 60천간, 흑해/홍해와 황해의 오행(5行)흔적, 한단고기의 12환국에 묘사된 수밀이(須密爾)와 수메르는 같은 뿌리라고 단언할수 있다.

(펀주: 어떤 학자분 - <'수밀이'는 원래 '소머리' 라는 말이다.
만주의 '우수하(牛首河)' 가 원래에는 '소머리강' 인 것처럼.
그러므로 '소머리' -> '수메르'가 된 것이다.>)

 

 

영국학자 '크래머'등의 발굴에 의하여 '머리가 검은 (Black Headed People) 동아시아 인들'이 문명을 다 가지고 들어와 수메르문명 세웠다는 것이 밝혀짐.-

 

언어 이외에 수메르 유래의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 '지구라트'이다.

지구라트는 벽돌로 쌓은 인조 탑이다.

물론 피라밋의 유래이며, 구약성서의 바벨탑의 전신이 다름 아닌 지구라트이다.

 

다행히 고고학자들은 지금 터키 그리고 몽고 지역까지 수메르의 유적을 찾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기원전 3500년경 과연 그 찬란한 고급 문명을 가지고 있던 지역은 과연 어딘가?

그밖에 수메르와 한국은 묘장제도, 순장제도, 60진법, 최고지도자의 상징을 봉황으로 삼고 있는 점 등에 있어서 앞으로 두고두고 그 유사성이 연구의 대상으로 남겨져 있다.

 

 

한단고기는 정사다.

 

 

1.환(한)단고기의 원본이 되는 규원사화 원본 발견. 1675년(조선 숙종 1년) 제작 원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있음.


2.대진국(발해)대왕 대흠무(大欽武)연호가 대흥(大興)이었는데

이 사실은 정효(貞孝)공주의 묘비가 발견된 1980년 이후에야 알려졌다. 그전엔 몰랐다.
그런데 "환단고기"의 "태백일사"에는 이미 <대흠무왕>의 연호가 '대흥'임을 밝히고 있다.

3.오성취루(五星聚婁)현상등 천문기록 일치.

4.조대기(朝代記) 삼성기(三聖記) 등 한단고기의 기록들이 조선왕조실록에 그 이름이 나옴.

등등 많은데 일단 천문기록을 살펴본다.

 



 [천문학으로 고조선사 증명했다.] <시사저널>

 

BC(기원전) 1733년 <홀달 단제> 시대 단군 조선인들이 보았을 오행성의 결집 현상을
서울대 박창범 교수가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역으로 추적하여

컴퓨터 합성 기법으로 시각화했다.
한민족의 뿌리인 단군조선에 대한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기성 사학계로부터 위서(僞書)라는 누명을 쓰고 버려져 왔던 상고사 서적들에 대한
복권 작업이 젊은 천문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져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와 표준 연구원 천문대의 라대일 박사는
학계에서 방치해 왔던 상고사 서적들의 내용을 천문학적인 방법론으로 검증한 결과
당시의 실제 상황과 일치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여
학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지난 2월부터 8월까지 약 6개월에 걸쳐 진행된 이들의 연구는 상고사 서적들에 나타난
당시의 천문 현상 기록을 당시의 실제 천문 현상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과학적인 근거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박교수와 라박사가 연구의 원본으로 삼은 서적은,
단군조선 시대에 대한 풍부한 역사 기록과 함께 당시의 천문 현상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돼 있는 <단기고사>와 <한단고기>에 들어 있는 <단군세기>이다.

<단기고사>는 발해의 건국 시조인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사서와 옛 비문, 현장 답사 등 13년간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엮은 단군조선사이다.
제1세 단군왕검으로부터 제47대 단군까지 약 2천여 년의 역사를
역대 임금의 재위 기간과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편년체로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이름만 전해 오던 것을,
구한말의 한학자인 유응두가 중국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단군세기>는 고려시대 행촌 이암이란 선비가 저술한 단군조선 시대 역사서로,
<단기고사>의 서술 내용과 큰 줄기가 서로 일치하고 있다.

 

오행성 결집, 큰 썰물 현상 모두 "사실"
이 서적들은 최근에 들어서야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또 일부 내용이 과장돼 있다는 이유로 기성 사학계로부터 사료로서 인정받지 못해 왔다.
그러나 재야 사학계에서는 이런 주장이야말로 일제 식민사학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통박해 왔다.

박교수와 라박사가 연구의 원본으로 삼은 <단기고사>와 <단군세기> 에는
일식 현상에 대한 기록이 모두 10군데,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 등
육안으로 보이는 다섯 별이 한자리에 모인 '오행성 결집현상'이 한군데,
큰 썰물에 대한 기록이 한군데 기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천체 현상은 물리 법칙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전개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특정 시점의 행성들 위치를 알면 슈퍼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이 행성들의 과거와 미래의 위치를 파악하는 일이 가능하다.
연구 결과, 이 사서들이 후대의 누군가에 의해 무작위 적으로 날조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준 것은 오행성 결집 현상에 대한 기록이었다.

<단기고사>나 <단군세기> 기록에 따르면,
제13대 단군인 홀달단제 50년, 즉 BC 1733 년에 다섯 개의 별이 서로 한군데에 모인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돼있다.
즉 '戊辰 五十年 五星聚婁'라는 글귀로,
무진 50년에 다섯 개의 별이 누성(婁星) 근처에 모였다는 뜻이다.
박교수팀은 기록에 나타난 BC 1733년을 기점으로 전후 약 5백50년 사이에
오행성의 결집이 일어난 시점을 샅샅이 조사했다.
조사 결과는 처음에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기록에 나타난 BC 1733 년으로부터 바로 1년 전인 BC 1734 년에
매우 뚜렷한 형태로 오행성이 서로 아주 가까워져 있는 현상이 발견된 것이다.
이 해 7월 13일 초저녁 다섯 개의 별은 지상에서 보아 약 10도 이내의 거리에 모여 있었다.
이 날은 왼쪽 하늘에 초승달이 비스듬하게 떠 있어 (어두워서), 별빛이 한층 더 찬란하게 빛났었다.
BC 1733 년을 기점으로 하여 5백50년을 전후한 시기에 오행성이 이보다 가깝게 모인 시기는
그보다 약 1백80년 전인 BC 1953년 2월 25일 새벽 단 한번밖에 없었다.


박교수는 "기록 연수보다 1년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은
당시의 시간 계산법과 약 3천여 년이 지난 지금의 시간 계산법 차이를 고려하면 무시해도 좋은 수치이다." 라고 말했다.
만약 후대의 누군가가 이 현상을 작위적으로 기술해 넣었을 경우,
이것이 서로 맞아떨어질 확률은 박교수의 계산 결과 0.007
즉 "세계 지도에서 임의의 한 장소를 지목했을 때 그것이 대한민국일 가능성"에 비유될 정도로 매우 희박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오행성 결집 현상과 함께 박교수팀이 주목한 것은 큰 썰물에 대한 기록.
두 사서 모두 제29세 마휴단제 9년 (BC 935년) 때 `南海潮水退三倜`라 하여
남해의 바닷물이 3척이나 뒤로 물러났다고 적혀 있다.
오행성에 대한 조사와 마찬가지로, BC 935년을 기점으로 전후 2백년 간에 나타난
조석력의 작용을 조사해 본 결과,
기록에 나타난 해로부터 4년 후인 BC 931년 11월 22일에
이 기간중 가장 큰 조석력이 작용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기록과 정확히 맞아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전후 2백년 기간에 가장 큰 조석력이
4년 후에 발생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 있는 대목이라고 박교수는 지적했다.
마찬가지로 후대의 누군가가 작위로 이 기록을 써넣었을 가능성은
0.04 에 지나지 않았다.
(펀주: 조작확률 = 0.007 * 0.04 = 0.00028
시간계산법의 차이와 역사기록이 오래 전해오면서 약간의 착오가 있을 수 있음.)

 

여러번 연구 결과 박교수팀이 내린 결론은,
"역사적인 사실은 왜곡하는 것이 가능하고 이를 확인하기도 어렵지만,
천문 현상은 윤색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사서들은 단군 조선 당시의 기록에 근거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라고 박교수는 말했다.

 

 

-기성 사학계도 연구 결과 인정-

박교수팀의 연구는 그 동안 이들 사서의 내용에 대해 상당 부분 신뢰하고 있으면서도
기성 학계의 두터운 벽 때문에 실제 연구 과정에서 제외시킬 수밖에 없었던
고조선사 연구 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윤내현 교수(단국대 사학)는 "그 동안은 주로 중국 사서들에 단편적으로 나타난 기록들에 의존해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연구를 계기로 서지(책을 연구하는)학자들이 참여하여 이 사서들의 내용을
좀더 정밀하게 검토한다면,
단군조선사를 생생하게 재현하는 일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라고 말했다.


박성수 교수(정신문화연구원, 사학)는 "기존 학계의 그릇된 통념을 깨는
획기적인 연구다. "라고 주장했다.

박교수팀의 연구에 대해서는 그 동안 상고사 서적들에 대해 비교적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 온 `한국상고사학회` 측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이들의 연구 결과가 기성 사학계에 신선한 자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상고사학회는 이 학회 연구 논문집 <상고사학보> 에
박교수팀의 논문을 게재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일단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와 관련해 상고사학회의 실무를 맡고 있는 최몽룡 교수(서울대, 고고학)는
"연구 결과의 중요성을 인정해 논문집에 싣기로 결정했다.

단군 조선에 대한 연구는 결국 한국 문화의 뿌리에 대한 연구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문헌사적인 연구뿐 아니라
자연과학적인 연구도 활발하게 벌일 필요가 있다" 라고 말했다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11&dir_id=110107&eid=vc6A36sMCXR2nSJ2d0JR3GPH0S2ZAu/5&qb=sK29xcXD

==> 한국의 인문학자들이나 청년학자들은 이 문제부터 연구해서 자료정리를 하고 세계학회에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주변국들이 워낙 힘이 강하므로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학자적인 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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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행복한 인생 원리
글쓴이 : 멀티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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