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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문제, 좀 제대로 가르치자

새암 2006. 7. 9. 22:36
아침햇발] 노동문제, 좀 제대로 가르치자/하종강
아침햇발
한겨레
▲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객원논설위원
새내기 대학생들에게 하는 강연을 끝내고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데 털모자를 썩 어울리게 쓴 학생이 다가오더니 말했다.
 

“저는 네덜란드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졸업하고 이번에 한국의 대학에 입학한 학생인데요. 며칠 전에 철도노조 파업할 때, 텔레비전 뉴스에서 시민들 인터뷰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모두들 한결같이 자기가 불편하다는 것만 이야기하는지 …. 파업하는 노동자들 입장에서 말하는 사람이 왜 한 명도 없는지, 참 이상했습니다.”

그 학생이 살았던 곳에서는 파업을 두고 “노동조합의 이러저러한 요구 사항은 타당한 내용이니 정부와 기업은 빨리 받아들여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는 시민들의 모습도 적지 않게 보았을 테니 깜짝 놀란 것도 당연하다.

굳이 ‘톨레랑스’를 들이대며 비교하지 않더라도 우리처럼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짙은 혐오감으로 무장한 사회는 별로 없다. 한 후배가 얼마 전 프랑스에 갔다가 한국인 관광 안내원에게 톨레랑스에 대해 물었더니 “톨레랑스, 그거 옛날 얘기입니다”라고 답하더란다. 그 안내원이 자신의 천박한 의식수준으로 프랑스 사회를 바라본 탓이거나, 아니면 유럽이라고 비켜갈 리 없는 신자유주의 광풍이 프랑스 사람들의 정서까지 시장경제 주의로 물들인 탓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동자의 권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대중적 정서가 역사 속에서 한 번이라도 자리잡았던 사회와 그런 경험이 전혀 없는 사회는 마치 산 것과 죽은 것만큼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제도권 교육에서 상당히 중요한 비중으로 노동문제를 가르친다. 독일에서는 초등학교 정규수업에서부터 노사관계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모의 노사교섭이 일상화한 특별활동으로 잡혀 있어 일년에 여섯 차례 정도 모의 노사교섭의 경험을 쌓는다. 교과서에는 노사관계를 “가족관계를 제외하고 인간이 사회에서 자기를 실현하며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관계”라고 정의한다.

프랑스에서는 중학교 과정 이전에 노동문제를 거의 완벽하게 학습하고 고등학교 1학년 과정에서는 ‘단체교섭의 전략과 전술’에 대해 학습하고 토론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조합 간부로 평생 활동해도 배우지 못할 만큼을 이미 제도권 교육 속에서 깨친다. 우리로서는 도대체 학교에서 왜 그런 것까지 가르쳐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지만, 그런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 사회 발전에 유익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역사 속에서 깨달은 나라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26살 미만의 청년들을 2년 동안 해고 가능한 비정규직으로 고용할 수 있다는 ‘최초고용 계약제’(CPE)에 대해서도 단순히 개인적 이익을 침해받았다는 이유로 150만명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올 수는 없다. 사회문제를 기업의 이익에 바탕을 두고 해소하려는 중도우파 정부의 정책이 프랑스의 미래에 끼칠 영향을 예견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노동조합을 비정상적으로 혐오하는 정서와 언론 보도의 홍수 속에서 자라난 학생들이 나중에 기업 인사노무 관리자가 되면 아무 죄책감도 없이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언론인이 되면 파업으로 말미암은 경제적 손실과 시민들의 불편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화물연대 파업 첫날, 모두 여섯 개의 기사를 찾아 읽었지만 그 어떤 기사에서도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을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가 수십 년을 살았다. 노동문제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이 그 왜곡된 환경으로부터 영향받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