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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객원논설위원칼럼] 연금 개혁으로 꺾이는 삶의 희망 / 김연명

새암 2006. 12. 31. 13:26

[객원논설위원칼럼] 연금 개혁으로 꺾이는 삶의 희망 / 김연명

 

요즘 진행되는 연금개혁을 보면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공적 연금 제도의 본질과 존재 이유는 무엇이며, 연금개혁이 필요하다면 어떤 사회적 과정과 대안적 수단이 필요한지, 그리고 연금개혁이 국민 개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성찰은 없고, 돈 많이 들어가니 무조건 깎자는 천박한 논리만 횡행하고 있다. 특히 노후 생활 유지라는 연금의 본질적 목적은 없어지고 ‘건전한’ 재정 유지가 마치 연금의 유일한 목적처럼 인식되는,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이상한 개혁이 벌어지고 있다.


공적 연금의 본질은 젊은 인구가 생산한 부의 일부를 공적인 강제성을 통해 노인에게 배당하는 것이다. 인류가 생긴 이래로 노동능력을 상실한 노인을 젊은 사람이 부양하는 사실 자체는 변함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노인 부양 부담이 한 사회의 경제적 능력을 초과하느냐에 있다. 국민연금의 잠재 부채가 하루 800억원씩 늘어난다거나 공무원연금에 수십조원을 지출해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가 개혁을 정당화하는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 논리들이 타당한 것인지, 그리고 누가 어떤 과정을 통해 이 수치를 만들어 냈는지에 대한 사회적 토론과 검증 과정은 거의 없다. 불쑥불쑥 언론을 통해 나오는 것이 전부이다 보니 말초적 감정만 자극하지 합리적 토론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공적 연금의 기능을 축소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정부는 노후소득의 대체수단에 대한 논의도 함께 제공해야 한다. 가족의 노인 부양 기능이 점차 약화돼 가고 있다. 기업연금이나 개인연금이 그 기능를 대신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 구매되는 사적 연금에는 정부의 합리적 규제가 필수적이다. 연금상품을 표준화해야 하고, 이 상품들을 소비자가 정확히 이해하고 선택하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며, 연금을 판매하는 금융·보험회사에 대한 재무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1980년대 이후 사적연금의 기능을 늘려가기 시작한 선진국들은 연금 지급의 불확실성 등 민간연금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감독 기능과 정부 규제를 대폭 강화해 왔다. 지금처럼 연금이 크게 깎이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에서 판매되는 연금상품마저 지급보장의 불확실성에 노출된다면 많은 국민은 심리적인 노후 ‘공황’ 사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공적 연금의 개혁에는 우리가 어떤 미래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한 가치 지향이 담겨 있어야 한다. 노후보장을 개인이 책임지는 철저한 수익자 부담 원칙에 맡길 것인지, 아니면 사회 구성원 간의 연대성을 중심으로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국민들에게 방향을 알려주고 예측 가능성을 높여주어야 한다. 정부의 연금개혁 방향은 낸 것만큼 받아가라는 수익자 부담 원칙을 강조하는 것인데, 이는 사회 연대성을 전제로 설계된 한국의 공적 연금 제도와 근본적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철학과 방향이 없는 현재의 연금개혁이 국민 개개인의 노후설계를 극히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점을 정부는 숙고해 보아야 한다.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고, 나아가 철학과 원칙, 그리고 미래 사회에 대한 성찰이 극히 부족한 현재의 연금개혁 논의는 대다수 국민의 노후의 삶을 극히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젊었을 때 집 마련하고 아이들 교육시키느라 이중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현재의 세대들은 이제는 늙어서 노후빈곤이라는 새로운 고통에 직면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안락한 주거 환경과 자식 교육에 대한 희망이 상실되어 가는 사회에서 노후의 삶마저 희망이 꺾인다면 우리 사회는 국민들에게 도대체 어떤 삶의 희망을 줄 수 있는가?


김연명/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출처 : 한겨레21논술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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