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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화를 불러들인 천박한 대일인식

새암 2008. 7. 17. 06:16
[사설] 화를 불러들인 천박한 대일인식
사설
한겨레
일본 문부과학성이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를 자국령으로 명기한 것과 관련해 온나라가 분노로 끓고 있다. 역사적·실체적 진실을 무시한 채 독도 영유권 주장의 강도를 단계적으로 높여가고 있는 일본의 행태를 결코 용인해선 안 된다. 정부도 일본의 도발에 맞서 대사 소환과 실효적 지배 강화 등 각종 조처를 쏟아냈다.

그러나 기존의 대일정책 기조와 딴판인 정부의 대책을 보면 그동안의 정책적 과오를 덮기 위한 눈가림용 호들갑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다. 일본은 2001년 처음으로 교과서에 독도 영유권을 언급한 이래, 그 표현 수위를 점차 높여 왔다. 문부과학성은 올해 개정되는 학습지도요령에 이를 명기할 것임을 이미 지난해에 밝혔다. 오늘 사태는 예견됐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4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미래를 위해 과거를 묻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에 앞서 권철현 주일대사는 이 대통령으로부터 “과거에 속박당하지도, 작은 것에 천착하지도 말라는 당부를 받았다”며 “독도·교과서 문제는 다소 일본 쪽에서 도발하는 경우가 있어도 호주머니에 넣어두고 드러내지 말자”고 말했다.

정부는 독도와 과거사 문제에 대한 도발을 용인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처하기 위해 지난해 2월 설치했던 동북아 역사문제 대책팀도 해체했다. 일본이 쾌재를 불렀을 것은 당연하다. 이래 놓고 나서 뒤늦게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당사자들이 명기하지 말아 달라고 매달렸다니 그것을 과연 정상적 외교라 할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주요 8개국 정상회담 당시 후쿠다 총리로부터 해설서에 독도를 명기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듣고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했다는 <요미우리 신문>의 보도는 더욱 기가 찬다. 우리로서는 이를 강력 부인하는 청와대 대변인 말을 믿고 싶지만, 그동안 이 대통령과 이 정부가 해 온 행태를 보면 일본 언론의 내부 분열 기도로 일축해 버리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대통령은 그 진위를 분명히 밝히고, 사실이라면 영토 보전 책임 방기로 엄중하게 문책받아야 한다.

오늘의 사태는 경망스럽고 천박한 정부의 대일·대외 인식에서 비롯됐다. 이제라도 이를 반성하고 국민과 국가의 이익에 대한 깊은 성찰에 바탕한 대일·대외 정책으로 나아가야만 한국 외교의 미래가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