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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기업들의 나쁜 교육

새암 2006. 7. 9. 21:35
[세상읽기] 재벌기업들의 나쁜 교육 / 이영자
[한겨레 2006-04-13 23:48]    

[한겨레] 연이어 일간지의 지면들을 잡아먹는 재벌기업의 정경유착, 탈세, 주가조작, 편법 거래·증여·상속, 편법 경영권 승계 등의 갖가지 의혹들은 분노를 넘어서 이제는 냉소적 짜증을 유발한다. 난리법석을 떨며 뉴스를 도배하다가도 어느 날 문득 용두사미로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검찰에서 어디까지, 얼마나, 파헤치는 척하다가 어느 시점에서, 왜, 접을 것인지, 아니면 이번에는 혹시라도 ‘재벌=성역’이라는 등식을 깨고 정말로 끝장을 볼 것인지, 그런데 애시당초 누가, 왜, 또 ‘괘씸죄’를 벌어들였는지 하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국가적 범죄들이 유전무죄로 끝나버리거나 정치거래로 유야무야되는 것을 거듭거듭 목격해온 사례들 속에서 누적된 의문이다. 그럼에도 정의구현의 ‘기적’을 바라는 마음을 접기는 여전히 힘든다.

부자들의 유전무죄는 법과 정치와 경제를 불신하게 만들고 편법과 불법을 통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당당하고 노골적으로 가르치는 나쁜 교육이다. 현대도 삼성처럼 수천억원만 내면 면죄부를 받을 것이라는 해법(?)이 벌써부터 나온 것은 바로 유전무죄가 이 사회에서 버젓이 공인되고 있음을 말한다. 천문학적 값어치의 편법증여와 경영권 승계에 대한 면죄부를 받고자 내놓은 돈이라는 딱지가 붙은 것만으로도 8000억원은 이미 반교육적인 효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이런 반교육적 배경은 아랑곳없이 오직 이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만 몰두하는 정부란다면 백년대계 교육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8000억원이 없더라도, 아니 8000억원을 더 쓰더라도, 유전무죄는 이땅에서 더는 허용될 수 없다는 확실한 모범사례를 보여주는 게 정부의 교육철학이어야 할 것이며, 이를 통해 “기업은 참으로 위대하다”는 대통령의 찬사가 허구가 아님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이런 마당에 삼성은 후속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고 당장에 면죄부를 받을 일이 없는 다른 기업들까지도 이에 압박감을 느끼며 눈치를 보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간에 재벌기업들의 문화복지니 장학재단이니 하는 것들도 이런 정략적 차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도 나쁜 교육은 계속된다. 참여연대가 지난 10년 동안 민간재벌 38곳 기업집단의 계열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다수 재벌에서 편법 경영권 승계나 총수 일가의 사익증대 행태가 나타났으며, 이런 행태는 신흥재벌에서도 답습되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반사회적인 행태에 앞장서는 이들이 사회공헌 운운하는 것은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그간에 이들이 저질러 온 사회적 폐해의 결과들을 숨기고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내놓은 비상책을 감히 ‘사회공헌’으로 포장하려는 것은 나쁜 교육임이 틀림없다.

결국 이러한 재벌기업들이 보여주는 자본주의 정신은 무엇인가? 부도덕성이다. 이는 특히 자본주의를 맹신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나쁜 교육이다. 자본주의는 늘 병든 몸으로 지탱해 왔다는 속설 대신, 자본과 시장의 논리를 이 시대의 유일한 시금석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재벌기업은 성공과 희망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가장 성공한 기업의 간판스타이자 ‘국민적 자부심’으로 꼽히는 이들이 ‘성공=부도덕성’이라는 공식을 가르치는 나쁜 교육은 미래세대의 희망을 저버리는 것이다. 이들이 그토록 집착하는 재산의 대물림이란 것도 희망의 대물림이 아닐 바에는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들은 정말로 모르는 것일까?

이영자 가톨릭대 교수·사회학